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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

노매드랜드의 배경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감독상을 수상하고, 골든글러브, 베니스 국제 영화제 등 다수의 시상식에서 많은 상을 받은 작품 노매드랜드입니다. 이 영화가 어떤 영화길래 작품상을 수상했을까? 무슨 내용일지 잘 모르겠고 막상 보려고 해도 어려워서 이해 못 하는 건 아닌가 망설여지시는 분들께 개인적인 해석 해드리겠습니다.
아카데미 작품상은 주로 시대상을 반영한 작품의 상을 주곤 합니다. 물론 촬영, 연출, 연기, 의상, 분상, 음악 등 기술적인 부분이 뛰어나다는 전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화 노메드랜드가 우리 시대에 어떤 점을 잘 반영했길래 작품상을 수상했을까? 노메드랜들은 한 시대의 끝자락에서 안식처를 찾는 노메드들을 통해서 인류의 안식처인 자연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영화 내에서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노메드들 즉, 방랑자들뿐 아니라 우리의 인류의 안식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인 방랑자들의 땅은 지구를 의미합니다. 그러면 지금이 어떤 시대길래 안식처를 찾는 방랑자의 이야기를 하는 걸까? 지금 2020년대에 들어선 세계는 민주주의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인류 고속 성장의 마지막 장을 맞이해 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과학 그리고 산업 발전을 이뤄낸 시스템이 이제 그 순기능을 다 해가면서 다양한 부작용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심각한 빈부 격차, 정치의 양극화, 환경 파괴 그리고 이런 것들을 원인으로 발생하는 인간소외 현상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노매드라고 불리는 방랑자들을 만들어 영화에서 보면 RTR의 리더인 바이 연설에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 '사회 시스템이 우리를 가축처럼 부려먹고 기력이 다하자 들판으로 내쫓아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도우며 생존해야 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버려질 것이고 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한 명이라도 더 구명보트에 태우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노매드의 삶

영화의 중심에 있는 노메드의 삶에 대해서 잠깐 얘기를 해볼까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은 실제 노메드들입니다. RTR의 리더 밥은 주인공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영화배우인 줄 모르고, 실제로 남편이 죽은 이야기를 한 줄 알고 위로해 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주인공인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나중에 은퇴 후에 펀으로 이름을 바꾸고 노메드의 삶을 살고 싶다고 했는데, 그런 면에서 펀 역시도 실제 노메드가 연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사막에 모여서 함께 차도 마시고, 필요 없는 물건들을 교환하고 하면서 생존에 대한 지식들을 서로 전달합니다. 그리고 계절에 따라 옮겨 다니고, 단기 일용직을 해가면서 돈을 벌고 있습니다. 아마존 물류창고, 캠핑장이나 공원, 시설 관리 농장, 그리고 다양한 생산 공장 같은 곳을 옮겨다닙니다. 이런 불안정한 직장을 떠돌고 불편한 자동차 생활하는 주인공 펀을 극 중 노매드가 아닌 주변의 인물들은 되게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관객들도 데이브와의 관계를 이어가는 펀을 보면서 편하게 정착하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영화 초반에 아는 지인의 딸이 펀에게 홈리스냐고 물어봅니다. 그때 펀은 '홈리스(homeless)가 아니고 하우스리스(houseless)'라고 말을 합니다. 이 대사는 펀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닌, 사회로부터 밀려 나온 방랑자들 모두가 자신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이끌면서 방랑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자존감을 보여주는 대사라고 생각을 합니다.

 

주인공 펀의 안식처

앞서 안식처를 찾는 노매드라고 했는데, 이 영화가 말해주는 안식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얘기를 해봅시다. 인생이라는 게 삶의 안식처를 찾는 여정이 아닐까? 그럼 주인공 펀의 안식처는 무엇일까? 펀은 죽은 남편이랑 함께 살던 집에 혼자 남아 있었고, 남편의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뒀습니다. 또 아버지가 선물해 준 접시 세트를 소중하게 여기고, 새로운 집이 된 자동차에도 많은 애착을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인생의 안식처를 집, 남편의 물건, 접시 세트, 자동차와 같이 물질적인 것에 있지 않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무형의 가치만이 삶의 안식처가 될 수 있고, 물질은 그저 상징하는 역할뿐이라는 얘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펀과 형부의 대화를 통해서 자산의 의미만을 가진 현대의 부동산을 마치 삶의 족새처럼 표현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역시 남편과 살던 집, 접시처럼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펀에게 데이브가 나타납니다. 데이브는 펀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다가오는데, 개미가 들끓어서 짐을 정리하고 있는 펀을 돕겠다 치고는 실수로 접시를 깨버립니다. 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접시인지라 펀은 데이브에게 화를 내면서 내쫓아버립니다. 데이브는 펀의 입장에서 완전히 불청객입니다. 아직 남편을 사랑하는 펀의 옆자리를 탐내고 아버지가 선물해 주신 접시까지 깨버리는 불청객입니다. 그리고 그날 밤 뻔은 깨진 접시를 이어 붙이면서 스스로 괜찮다고 다독입니다. 그리고 다음 날 병에 걸린 아픈 데이브를 돌봐줍니다. 접시는 깨졌어도 다시 이어붙이면 그만입니다. 순간 마음은 아팠지만 그렇다고 아버지와의 추억이나 사랑이 사라진 것은 아닌 것을 되새깁니다. 그렇게 펀는 데이브의 호의를 받아들이고 데이브와 함께 식당에서 일을 합니다. 그러니까 데이브는 접시를 통해서 펀이 가지고 있던 물질적인 한계를 깨준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펀의 생각은 이후 밥과의 대화에서 잘 보여주는데, 밥은 죽은 아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돕는다고 합니다. 타인을 돕는 무형의 가치에 자신의 삶을 담는 겁니다. 펀이 인생을 기대는 안식처는 자유로움입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 역시 아주 중요한 가치들이지만 아버지의 접시나 남편의 집과 같은 물질적인 추억, 또는 살아있는 언니조차도 펀을 붙잡지 못합니다. 펀은 실제로 그들 곁에 머물러 있는 것보다 마음으로 사랑을 이어가면서 자신의 자유를 누리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펀의 성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 세 번 나옵니다. 언니네 집에서 떠나올 때, 데이브 집에서 떠날 때,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남편과 살던 집에서 떠날 때 이 세 번의 장면에서 펀은 화면 밖으로 사라집니다. 극 중 언니와 나눈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펀은 떠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펀이 차를 타고 운전하는 장면에서 엔진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불편한 소음으로 여겨지는 엔진 소리가 펀의 공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house는 없지만, 이 차는 펀에게 home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동차가 펀의 안식처는 아닙니다. 영화 중간에 rv 전시회에 놀러 간 노매드들이 비싼 최고급 캠핑카를 구경하면서 부러워하는 모습이 나오지만, 펀은 결국 자신이 아끼고 갖고 온 낡은 차를 쉽게 버리지 못하고 수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단순히 자동차가 펀의 안식처가 아니라, 자유롭게 세상을 누비는 것이 그녀의 안식처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영화에서 말하는 안식처

그렇다면 노매드와 펀을 통해 영화에서 말하는 인류의 안식처는 무엇일까?
펀이 자유롭게 세상을 누비는 것이 안식처라고 한 것처럼, 영화 속에서는 다양한 노메드들이 각자의 안식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RTR에서 만난 펀의 친구 스왱키는 자연을 느끼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여행하는 동안 마주친 경이로운 자연의 모습들을 설명하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대단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극중 암세포가 머리까지 전이된 스왱키는 마지막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스왱키는 생애 마지막 풍경으로 원했던 제비 둥지가 가득한 절벽에 도착해 그 장면을 찍어서 펀에게 보내줍니다. 펀 역시 자연 속을 돌아다닙니다. 영화 속에서 펀이 잠옷을 입고 숲 속을 돌아다니거나, 옷을 다 벗고 계곡에서 목욕을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봤을 때는 굉장히 이상한 행동이지만, 이 자연이 home이고 안식처라고 여겨졌을 경우에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대구의 집을 나선 펀이 찾은 곳은 바닷가의 절벽입니다. 강풍과 비가 내리치는 그 장소에서 펀은 시원한 해방감과 함께 자연 속의 자유를 느낍니다. 영화는 노메드 개인들의 이야기에서 각자 다른 삶의 안식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한 시대의 마지막을 맞이한 인류의 안식처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모든 인류의 안식처는 지구의 자연입니다. 영화 속에서 자주 쓰이는 요소로 돌이 나옵니다. 주인공 펀이 희귀한 돌을 파는 일을 한 적이 있는데, 젊은 방랑자들이 찾아와서 예쁜 모양의 돌을 팔면서 기름값 좀 벌어보려고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또 데이브가 일하는 곳에 놀러 가서 가스로 인해 구멍이 뚫린 돌을 구경하던 펀은 혼자 사람들에게서 떨어져서 여기저기 누비고 다니는데, 그때 데이브가 펀에게 뭘 찾냐고 물어봅니다. 펀은 그저 바위라고 대답을 합니다. 여기서 말한 바위는 아주 큰 돌 지구가 아니었을까 추측합니다. 펀은 데이브가 남기고 떠난 구멍 난 돌을 볼 때에도 돌 자체가 아닌 그 돌의 구멍을 통해서 자연을 들여다봤습니다. 스왱키가 죽은 다음에는 그녀의 친구들이 모여서 추모하는 자리에서 모닥불에 스윙키가 좋아하던 예쁜 돌들을 던지면서 애도하기도 합니다. 모든 생물은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 화석이 되기도 하고, 석탄, 석유가 되기도 합니다. 후안에게 찾아온 젊은 방랑자들은 돌을 팔아 기름을 샀고, 스왱키는 죽어서 돌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 돌은 결국 지구인 것입니다. 영화는 돌을 통해서 자연과 지구를 연결시킵니다. 

 

노매드랜드의 시

영화 노매드랜드에서는 두 편의 시가 나옵니다. 첫 번째 시는 과거에 대한 시입니다. 돌고 돌아 촛불은 꺼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한 시이고, 두 번째 시는 여름에 관한 시입니다. '아름다운 여름은 짧지만 여름 같은 너의 아름다움은 영원할 것이다'라는 사랑하는 이에게 바치는 시인데 이 두 개의 시를 합쳐보면 짧지만 크게 부응했던 지금 시대를 인류의 짧았던 여름에 비유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지금까지 화려한 부흥은 이제 끝났지만 문명과 그것을 품어주는 자연의 아름다움은 영원하다는 그런 해석을 해봤습니다. 
이 시대가 끝나도 인류는 계속될 것이고 자연이 인류의 안식처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연을 떠날 수 없고, 언제나 자연과 함께일 것입니다. 미래에 지구를 벗어나는 모험을 하더라도 지구 밖에 또 다른 지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즉, 지금의 행성 지구가 사라지더라도 우리는 인류가 태어난 지구의 자연을 품고 떠날 것이고 언제나 후손들에게 인류가 시작된 푸른 별에 대해서 가르칠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지구와 자연을 소중히 아낄 것을 당부할 것입니다. 펀이 스왱키의 마지막 차 수리를 도울 때 스왱키가 남는 페인트를 가져다 쓰라고 말합니다. 펀은 멀쩡하다고 괜찮다고 하지만 스왱키는 여기저기 벗겨지고 엉망이라고 잘 손보고 아끼라고 말합니다. 이 대사는 아마도 지구와 자연을 함부로 굴리는 지금 세대의 인류에게 전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늘 함께인 만큼 소중함을 잃기 쉬운 자연이 우리에게는 언제나 돌아갈 안식처이기 때문에 우리는 잘 돌보고 아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좋은 영화 노매드랜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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